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형 판타지 (문단 편집) ==== 하이텔 한국적 판타지 논쟁 ==== 한국적 판타지 니즈가 대중의 주목과 내적 성장하에 점차 생겨나기 시작한 가운데, 한국적 판타지를 본격적인 담론으로 끌어올린 사건은 2001년 1월 '''하이텔 시리얼 잡담란'''에서 군사소설가 [[김경진(소설가)|김경진]]/안병도, 그리고 판타지소설가 [[이영도]]/[[이우혁]]의 '''한국적 판타지 논쟁'''으로 여겨진다. >제가 한국적 환타지라는 말을 쓰고 꺼낸 것은 바로 앞의 문제와 연관된 선상에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분명히 언급하건대, 저는 한국적 환타지 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환타지의 전부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이므로 한국적 환타지를 만들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도 절대 배제해야 될 위험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한국적 환타지는 대단히 좋은 것이라 여깁니다. 우리가 그런 시스템을 못 만들면 할 수 없지만,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한국적'이라는 색깔을 붙여야만 된다는 국수주의 또한 대단히 위험한 것이겠지요. 한마디로, 환타지는 폭 넓은 것이며 한국적 환타지도 환타지의 한 갈래임에 불과합니다. 한국적 환타지를 만들어 독창적 가치관을 만들었다고 해도 환타지의 주류가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중세서양이 환타지의 정형이 아닌 것 처럼, 한국형 환타지도 환타지의 정형은 될 수 없는 겁니다. 환타지는 바로 그 제한 없음과 무한히 뻗을 수 있는 요소 때문에 환타지이기 때문입니다.... >---- >[[이우혁]] - 하이텔에서 김경진, 안병도가 이영도를 비난하는 것을 보고 >미국 작가가 어떻게 하이 팬터지를 쓰는가 등의 이야기는, 완전히 거꾸로 이해하셨습니다. 미국은 유럽을 가져다 쓰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고, 그래서 팬터지를 완성시켰습니다. >(중략) >한국적 팬터지가 뭡니까? 말씀해주시지요. 쓰신 바대로 그걸 생각할 능력도 없고 생각도 없으셔서 다른 것들은 서양 오랑캐 것이라고 비웃어버리는 재미만을 탐닉하실 생각이십니까? 님께 그걸 생각할 능력도 있고 생각도 그렇게 많으시다면(연작물로 3회째니 그럴 의도는 충분하시다 판단됩니다.) 이제 제발 좀 써 주십시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는 식은 사실 지겹습니다. 밥이니 한식이니 질그릇이니 하는 모호한 상징어들로 빙빙 도는 것도 보기 좋지 않고요. 한국적 팬터지가 뭡니까? >---- >[[이영도]] - 한국적 판타지를 쓰지 않는다고 본인을 비난한 김경진, 안병도에게 남긴 글 * 해당 논쟁의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의 모 창세기전 팬카페의 [[http://m.cafe.daum.net/shinpang/1uev/1724?q=D_Qk8xKV71QuE0&|2002년도 게시글]]([[https://archive.is/qAcY1|아카이브]])에 일부가 남아있다. 00년대 당시는 1세대 판타지소설이 PC통신을 중심으로 등장하였고, 판타지소설이라는 장르가 주목받으며 태동하던 시기였다. 이 가운데 군사 소설가 안병도와 김경진은[* 이들은 비슷한 시기 명량해전을 다룬 전쟁소설 《격류》를 공동 집필했다.] 판타지 소설가 이영도에게 《[[퇴마록]]》을 예로 들며 '한국적 판타지를 쓰지 않는다'는 비판을 가한다. 김경진은 중세 서양 배경의 [[검과 마법]]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한국의 판타지소설들은 독창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양인이 한국인이 쓴 중세 판타지 소설을 좋아할 것 같지 않다. 드래곤 라자 같은 소설이 서양인의 책장에 꽂힐 일은 없을 것'이라며 장르와 배경 면에서 독창적인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집필하는 군사소설 장르는 전투 상황 묘사에 있어서 미국과 일본 배경보다 비교우위에 있다'는 요지의 주장을 이어가기도 했다. 안병도 역시 김경진과 비슷한 입장에서 이영도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이에 이영도는 며칠동안 김경진/안병도 두 사람과 논쟁을 이어간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적 판타지가 뭔지 모르겠다'고 반론하며, 《[[구운몽]]》을 예시로 들며 '''"한국인이 쓰면 한국적이다."'''라는 반박을 하였으며, 타국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 나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만약 김경진과 안병도가 한국적 판타지를 쓸 수 있으면 부디 직접 집필하길 바란다는 입장을 보였다. 논쟁이 심화되자 당시 게시판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이우혁]]이 지인에게 해당 논쟁이 일고 있음을 듣고 직접 등장해서 '자신은 《퇴마록》을 한국적 판타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관심 있는 분야인 건 사실이고, 왜란종결자로 관련 시도를 해 본 것'이라는 요지의 의견을 장문으로 개진하며, '한국적'이라는 강박관념 내지 색깔을 붙여야 한다는 국수주의를 경계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이우혁은 한국적 판타지의 정의가 온전하지도 않은데다 한국인이 한국적 판타지만을 쓰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는 의견을 개진하고 말미에 이영도에 대한 인신공격을 멈출 것을 종용하기도 했으나, 결국 안병도와 김경진의 어조가 격해져 인신공격 수준으로 치달았고 이에 이영도가 논의를 그만두며 논쟁은 결론 없이 종결된다. 이러한 논쟁은 이후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의 한국적/한국형 판타지 논쟁으로 이어지며, 웹소설 시기 이전까지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의 주요 논쟁거리로 자리매김한다. 김경진이 이영도를 비난하면서 보인 격한 어조는 분명 문제가 되지만, '독창적인 것이 세계적으로 어필할 것'이라는 그 논지 자체는 여전히 대중적으로 비슷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었다. 가령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을 예시로 들면 영국의 원작 판타지 소설을 재해석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애니메이션)|하울의 움직이는 성]]보다 일본 특유의 색채를 짙게 넣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평가가 세계적으로 훨씬 좋고, 해당 작품의 한국 개봉 시점에서도 국내 평단과 대중들 사이에서는 '왜 한국은 이런 명작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못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일기도 했다. 하이텔에서 일어난 논쟁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을 듯. ---- 한편 이영도는 논쟁 1년 후인 2002년 3월, 보란듯이 《[[눈물을 마시는 새]]》를 써냈으며, 눈마새 시리즈는 이후 한국적/한국형 판타지 담론에서 빠지지 않는 모범 사례로 꼽히게 된다. 물론 《눈물을 마시는 새》시리즈가 고평가받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플롯이나 주제의식 등의 문학적 소양과 서구형 세계를 탈피한 독창적인 환상세계의 결합에 있는 것이고 '세계관이 한국적이라서'는 아니었다. 눈마새에 도깨비나 온돌, 솟대 같은 한국적인 요소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주제의식과 직접 연결된 소재가 아니라 오로지 장치로서의 기능만 하고 있는 정도이다. 이러한 입장은 이영도 본인에게서도 여러번 밝혀진 바 있는데, 이영도는 《눈물을 마시는 새》가 한국적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으며, 《피를 마시는 새》 출간 이후 인터뷰에서도 "한국적 판타지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중략) 민족이 국가보다 상위 개념이라고 볼 때 민족 판타지라는 말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키지 않는다. 내 판타지 속에 도깨비 같은 캐릭터를 쓰는 것은 유리한 측면은 있다. 독자와 작가가 같은 언어와 같은 전설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어필할 것이다."라며 직접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http://blogs.chosun.com/mhfx/2005/07/27/%ED%8C%90%ED%83%80%EC%A7%80-%EC%9E%91%EA%B0%80-%EC%9D%B4%EC%98%81%EB%8F%84-%EC%9D%B8%ED%84%B0%EB%B7%B0-%EC%A0%84%EB%AC%B8/|판타지 작가 이영도 인터뷰 전문. 2005. 7. 27.]]] 그럼에도 한국적 판타지의 기준점이 될 만한 작품들을 언급할 때 눈마새 시리즈는 항상 언급되며, 세계관이 한국적인 대표적 한국형 판타지라는 데에는 이견이 있지만 이영도라는 한국인 작가만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가진 한국적 판타지라는 점에는 부정하는 여론이 크게 존재하지 않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